보훈처, 손혜원 부친 독립유공자 선정.."정상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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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손 의원 부친 유공자 신청 시기에 '의혹' 제기
국가보훈처 "2017년부터 연구 용역으로 추진했던 것"
손 의원 오빠의 전화 신청.."재심이기 때문에 가능해"
文 대통령 훈장 전달 "포상자 중 유일한 생존 배우자"
【서울=뉴시스】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2018.10.10. (사진=뉴시스DB)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국가보훈처가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부친의 독립유공자 선정과 관련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18일 해명자료를 내고 "지난해 개선된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 기준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양수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17일 손 의원 부친인 손용우(1997년 작고) 선생의 건국훈장 수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한국당에 따르면 손 의원의 부친은 1982년, 1985년, 1989년, 1991년, 2004년, 2007년 6차례에 걸쳐 보훈신청을 했다가 심사에서 탈락했다. 탈락 사유는 광복 이후의 행적이 불분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손 의원 측은 지난해 2월 다시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했고, 부친은 최종적으로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한국당 측은 손 의원 측의 포상 신청 후 보훈처가 4개월 만에 포상확대 방침을 밝히고 손 의원의 부친이 선정된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보훈처는 신청 시기와 관련해 "2017년부터 연구용역과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광복 이후 행적 불분명자에 대해 포상을 보류한 사례가 많았으나 북한정권 수립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은 분의 경우에는 포상할 수 있도록 지난해 4월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을 개선하고 6월에 이같은 방침을 밝혔으며 지난해 광복절 계기 심사부터 적용했다"고 반박했다.
또 손 의원의 오빠인 손모씨가 지난해 2월 전화로 신청했고, 지난해 당시 포상자 중 전화 신청의 경우 한 건 뿐이라는 한국당의 의혹제기에 대해서는 "독립운동 관련자료 등 문서제출로 신청이 이뤄지나 재심은 관련자료가 있기 때문에 전화를 통해서도 신청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보훈처는 지난해 광복절 행사에서 문 대통령이 손 의원의 모친에게 훈장을 전달한 점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보훈처는 "대통령 친수자 선정은 훈격과 운동계열 등을 고려하며,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생존한 경우,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최우선적으로 선정하고 있다"며 "손용우 선생은 광복절 포상자 중 유일하게 배우자가 생존해 계셨기 때문에 건강상태 등을 확인해 친수자로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ksj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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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의원이 목포 건물 매입때문에 시끄러운 마당에 자유한국당이 손의원의 부친의 독립유공자 선정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에대해 보훈처가 해명을 했군요..
그럼 손혜원 의원의 부친에 대해 알아봐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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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문 대통령, '고 손용우 선생에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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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손 의원 부친 유공자 신청 시기에 '의혹' 제기
국가보훈처 "2017년부터 연구 용역으로 추진했던 것"
손 의원 오빠의 전화 신청.."재심이기 때문에 가능해"
文 대통령 훈장 전달 "포상자 중 유일한 생존 배우자"
【서울=뉴시스】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2018.10.10. (사진=뉴시스DB)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국가보훈처가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부친의 독립유공자 선정과 관련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18일 해명자료를 내고 "지난해 개선된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 기준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양수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17일 손 의원 부친인 손용우(1997년 작고) 선생의 건국훈장 수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한국당에 따르면 손 의원의 부친은 1982년, 1985년, 1989년, 1991년, 2004년, 2007년 6차례에 걸쳐 보훈신청을 했다가 심사에서 탈락했다. 탈락 사유는 광복 이후의 행적이 불분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손 의원 측은 지난해 2월 다시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했고, 부친은 최종적으로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한국당 측은 손 의원 측의 포상 신청 후 보훈처가 4개월 만에 포상확대 방침을 밝히고 손 의원의 부친이 선정된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보훈처는 신청 시기와 관련해 "2017년부터 연구용역과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광복 이후 행적 불분명자에 대해 포상을 보류한 사례가 많았으나 북한정권 수립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은 분의 경우에는 포상할 수 있도록 지난해 4월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을 개선하고 6월에 이같은 방침을 밝혔으며 지난해 광복절 계기 심사부터 적용했다"고 반박했다.
또 손 의원의 오빠인 손모씨가 지난해 2월 전화로 신청했고, 지난해 당시 포상자 중 전화 신청의 경우 한 건 뿐이라는 한국당의 의혹제기에 대해서는 "독립운동 관련자료 등 문서제출로 신청이 이뤄지나 재심은 관련자료가 있기 때문에 전화를 통해서도 신청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보훈처는 지난해 광복절 행사에서 문 대통령이 손 의원의 모친에게 훈장을 전달한 점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보훈처는 "대통령 친수자 선정은 훈격과 운동계열 등을 고려하며,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생존한 경우,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최우선적으로 선정하고 있다"며 "손용우 선생은 광복절 포상자 중 유일하게 배우자가 생존해 계셨기 때문에 건강상태 등을 확인해 친수자로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ksj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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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의원이 목포 건물 매입때문에 시끄러운 마당에 자유한국당이 손의원의 부친의 독립유공자 선정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에대해 보훈처가 해명을 했군요..
그럼 손혜원 의원의 부친에 대해 알아봐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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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문 대통령, '고 손용우 선생에 건국훈장 애족장'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고 손용우 선생에 대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배우자 김경희 씨에게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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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손용우 선생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어보입니다. 일단 보훈처에 공개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보훈처 : 손용우
손혜원의원이 고 손용우 선생의 자녀입니다. 이에 대한 인터뷰가 과거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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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을 인정 받아 이번 15일 제73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고 손용우 선생 사진. 사진은 그의 딸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공했다. ⓒ 손혜원 의원
"1940년 서울에서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 선전하고, 동아·조선일보 폐간의 부당성을 성토하며 민족 의식을 고취하다 체포돼 징역 1년 6개월을 받음."
고 손용우 선생(1922~1997)에 대해 정부가 발표한 설명 자료 내용이다. 세상을 떠난지 20년이 넘은 손 선생은 이번 73주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됐다. 손 선생은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마포을)의 아버지다.
"독립운동가 손용우님은 20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이십니다. 살아서 (독립운동가로 인정) 받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7일, 손 의원 페이스북)
손 의원은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 6번이나 서훈 신청을 했지만 좌익 운동 이력 때문에 매번 거절당했던 아버지였다. 손 의원은 "늦었지만 어머니(92세)가 살아 계실 때 받게 돼 너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었다.
손 의원은 "아버지는 몽양 여운형 선생의 청년 비서였다"라며 "여운형 선생을 따라 10대 시절인 1940년부터 친일 반대 데모에 뛰어들었다가 감옥살이를 했다, 해방 이후 젊은 시절까지 독립운동과 학생운동 일선에서 극렬하게 뛰었던 정치가"라고 소개했다. 손 의원은 아버지를 "이름이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독립을 위해 뛴 수많은 이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정작 손 의원이 직접 기억하는 아버지는 정치인이 아니라 사업가였다. "통일이 되기 전까진 다시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앞서 6번이나 연거푸 무산됐던 손용우 선생의 서훈이 뒤늦게 결정된 것을 두고 손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보훈 강화 기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 의원은 "작년 8.15 광복절 행사 때 문 대통령이 독립 운동을 하셨던 분들에 대한 보훈을 언급한 것을 보고 큰 오빠에게 다시 한번 독립유공자 신청을 해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 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문 대통령이 천명한 정의와 원칙 광복절 기념사에 담긴 네 가지 메시지)
손 의원은 최근 일부 보수 세력이 재점화하려 하고 있는 '건국절' 논란에 대해선 "이승만 대통령도 임시정부부터 건국을 인정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말도 안 되는 친일파들의 주장"이라며 "내년에 있을 100주년 행사를 잘 준비해야 한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15일 제73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건국훈장 93명(애국장 31명, 애족장 62명)·건국포장 26명·대통령 표창 58명, 총 177명을 포상할 계획이다.
다음은 손 의원과 <오마이뉴스>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직접 서훈 신청하면 오해살까봐 오빠에게 부탁... 늦었지만 감개무량해"
- 부친인 고 손용우 선생이 이번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됐다.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영영 독립운동가로 인정 못 받는 줄로만 알았다. 아버지가 살아 생전에 독립유공자로 6번이나 신청했는데... 전부 다 떨어졌다. 그나마 어머니라도 살아 계신 게 너무 다행이다."
- 그간 서훈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은 이유가 뭐였나.
"좌익 활동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몽양 여운형 선생의 청년 비서였다. 고향 청년들을 불러모아 행동 대원 같은 걸 했다고 들었다. 친일에 반대하는 데모를 하다가 1941년에 2년 3개월의 감옥살이를 하셨단다. 이번 서훈 사유에는 1년 6개월로 나오지만 데모를 하다가 징역이 추가되신 걸로 안다. 작년 광복절 행사를 보니 독립유공자로 6개월 징역 사신 분들도 다 서훈을 받으시던데... 사회주의 운동 전력이 있다고 해도 전쟁 이전의 일인데 아버지를 유공자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억울했다."
- 이번에는 서훈 대상에 포함됐다.
"6번 떨어지고 7번째에... 작년 8.15 광복절 행사 때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 운동을 하셨던 분들을 모두 찾아내 명예롭게 영광을 돌려 드리겠다고 했다. 보훈을 강화한다는 말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당장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났다. 보훈처 신청 절차를 알아봤다. 내가 직접 하면 또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큰오빠에게 신청해보라고 말했다. 이번에 아버지가 훈장 대상자에 포함된 걸 보니 정부 수립 이전에 사회주의 운동 전력이 있던 유공자들에 대한 제한이 풀린 것 같다. 독립운동의 폭이 넓어져 이렇게 서훈을 받을 수 있게 돼 감개무량하다."
- 어머니 감회도 남다르시겠다.
"아버지가 20년 전에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에게 봉투를 남기셨단다. 언제 쓸 일이 있을 거라시면서...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작년에 친정에서 처음 봉투를 꺼내 봤다. 봉투 안에는 아버지가 직접 서훈을 신청했던 4건의 서류들과 오빠들이 추가로 2번 더 신청했던 자료들이 모두 있더라.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훈장을 받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시긴 하지만 어머니가 직접 단상에 올라 대통령께 직접 훈장을 받으시게 됐다. 저도 행사장엔 가지만 단상에 오르진 않는다."
"술 취해서 방에 들어가 이불 싸매고 애국가 부르던 아버지"
- 손용우 선생 행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분이었나.
"여운형 선생에 감복돼서 학생운동을 시작하셨다고 들었다. 아버지의 이름이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독립을 위해 뛴 수많은 이들 중 하나일 것이다. 전쟁 전인 1940년부터, 그러니까 10대 때부터 여운형 선생을 따라다니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해방 이후, 젊은 시절까진 극렬한 학생운동을 했던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통일되기 전에는 정치가가 될 마음이 없다고 하셨다고 한다. 경기도 가평 분이신데 지역에서 국회의원 하라고 많이 요청도 왔지만 다 거절하셨단다.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 사실 아버지는 사업가로만 기억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지금 뜬금 없이 정치를 시작했다는 게 무슨 운명 같다는 생각도 든다."
- 기억나는 아버지 모습이 있나.
"우리 아버지는 술을 전혀 못 마셨는데 평생에 딱 한 번 취해서 집에 들어오셨던 걸 본 기억이 있다. 휘청거리며 방에 들어가시더니 이불 속에 싸매고 들어가 애국가를 부르시는 게 아닌가. 아버지는 음치셨는데 술도 못 먹고 노래도 못 부른다고 형제들끼리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숨어서 애국가를 부르시던 모습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냥 말수 적은 사업가로만 알았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일선에서 학생운동과 독립운동을 위해 뛰었던 정치가였다는 게...
데모도 한 적 없고 학생 운동과도 인연이 없는 제가 엉뚱하게 정치하게 된 것이 무슨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 평행 이론 같다는 생각도 들고... 저를 비롯해 가족들이 다 조금 짠한 마음이다. 우리 6남매, 손자 12명 모두 이미 학교를 다 마쳤고 취직도 다 했다. 독립유공자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아무것도 못 받는거다. 그래도 이번에 아버지 한이 조금이라도 풀린 것 같아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 아버지 뜻을 이어받아 어떤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가 있나. .
"이미 저도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지만, 아버지의 한이 닿아서 이런 공직도 맡게 된 것 아닌가 싶다.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겠다. 아버지 뜻을 생각해 늦었지만 올해에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에도 참여하겠다고 했다. 사업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 일부 보수 세력에선 올해 광복절을 두고 '건국 70년' 이라고 주장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건국절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관련 기사 : "김구는 건국방해세력"에 박수? 이상한 '건국절 맞짱 토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친일파들 주장 아닌가. 이승만 대통령도 임시정부부터 건국을 인정했다는 기록이 다 그대로 남아 있다. 얘기할 가치도 없다. 내년에 있을 건국 100주년을 잘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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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되기까지 6번 떨어지고 7번째 인정이 되었는데 그때가 문재인 정권이 시작된 때이죠..
보훈처장도 바뀌고요..
탈락사유는 광복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것인데.. 손혜원 의원의 인터뷰와 다른 관련기사를 보면 여운형선생과의 인연과 사회주의 운동여력때문에 그동안 좌절된 것으로 본다 하는데 일리있는 말같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손혜원의원을 공격하기 위해 목포 건물매입과 더불어 청와대까지 끌어들이더니 이젠 손의원의 부친까지 끌어들였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이양수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과 더불어 자유한국당의원들의 가족사에 만약 친일 행적이 있어 물고 늘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마도 그때서는 뭐라 못할 것 같네요..
이번 사례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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