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경찰 '반민특위 습격'..민족반역자에 면죄부
다음 네이버 [앵커] 친일파 청산을 위해 만들어졌던 반민특위는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 해체됐습니다. 친일경찰의 조직적인 방해와 반민특위 습격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후 민족반역자들은 면죄부를 얻었습니다. 김대근 기자입니다. [기자] 친일 행적을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지난 1948년 조직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어렵게 출범은 했지만, 친일파의 방해 공작과 회유에 시달렸습니다. [김정륙 /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아버지 수행비서에게 들은 얘기에 의하면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감투를 들고 왔어요. '슬슬하고 대충 넘어가보자. 내각에 들어와라. 뭐를 원하느냐.' 아버지가 화가 난 거예요. 감투를 들고 흥정하러 왔다고. ] 친일파 청산에 부정적이던 이승만. 친일경찰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반민특위 암살 계획을 세우거나, 사무실 앞에서 연일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1949년 6월 6일, 친일경찰들은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일을 벌였습니다. [김정륙 /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친일파에게 당한) 피해를 호소하는 고발장이 전국에서 반민특위로 들어왔는데, 엄청 쌓여있었어요. 산 증언이거든요, 이게.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에요. 얘들(친일경찰이)이 쳐들어와서 제일 먼저 없앤 게 그겁니다. 그걸 탈취해서 불살라 버렸어요.] 결국, 특위는 1년도 안 돼 해체됐고, 민족반역자에 대한 심판은 흐지부지됐습니다. 역사에 친일 잔재라는 오점을 남긴 반민특위 습격 사건. 70년이 지났지만, 경찰의 공식 사과는 없습니다. [방학진 /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친일세력 청산을 위한 조직을) 국가 공권력이 침탈한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특히 거기 앞장섰던 대한민국 경찰은 단 한 번도 사과나 반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찰이 민주경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민특위 해체 사건의 원죄가 있는 선배들의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