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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극비문서 입수 "일제는 한반도를 총알받이로 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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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네이버 일본 육군이 작성한 극비문서 ‘1945년 3월 예하부대장 회동시 상황보고, 인천육군조병창’. 우측 상단에 ‘극비’라고 적혀 있다./‘1945년 3월 예하부대장 회동 시 상황보고, 인천육군조병창’ 패전을 앞두고 작성된 일본군 극비문서가 발견됐다. ‘1945년 3월 예하부대장 회동시 상황보고, 인천육군조병창’이라는 문서다. 제목만 보면 정례보고처럼 보인다. 하지만 총 120쪽에 달하는 내용은 모두 ‘극비’로 분류돼 있다. 전쟁 막바지 일제의 한반도 활용 계획과 침탈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서가 다루는 지역은 현재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마켓’, 옛 이름은 인천 일본육군조병창(부평 조병창)이다. 극비문서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조선인을 강제동원해 조병창을 지하화한다’, ‘일본 도쿄 제1조병창을 부평으로 옮긴다’. 단순해 보이지만 무서운 의도가 담겼다. 일제는 부평 조병창을 지하화해 침략전쟁을 지속하려고 했다. 이와 동시에 생산시설을 부평으로 옮겨 도쿄에 집중되는 미군 폭격을 분산하고자 했다. 전쟁은 지속하되 위험은 전가하려고 한 것이다. 문서 속 계획은 실제로 진행됐다. 부평 지역 곳곳에 남은 일제시대 흔적들은 당시 계획을 그대로 반영했다. 극비문서에 첨부된 지도를 들고 부평일대를 돌면 일제 유적들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지금까지 유적들이 ‘왜 그곳에 있는지’, ‘무슨 용도인지’ 아무도 몰랐을 뿐이다. 극비문서에 첨부된 부평 조병창 지하화 계획 지도(왼쪽)와 현재 인천시 부평구 동일 지역의 위성사진/부평문화원 제공 경향신문은 지난 1일 부평 조병창 유적이 철거된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병원시설로 알려져 있는 일명 1780호 건물이 철거되는 이유와 그 결정과정을 밝히기 위해 부평 조병창의 역사적 가치는 후속보도로 미뤘다. 이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없는 일제시대 건물을 왜 남겨야 하느냐’는 주장도 있었다. 지금부터는 부평 조병창 유적의 역사적 중요성을 밝힌다. 드문드문 알려진 사실들이 아닌 일제가 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