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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나비처럼 훨훨'..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 별세(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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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네이버 힘든 삶 살았으나, 끝내 일본 사죄 못 받아..남은 생존자 겨우 22명 문 대통령, 곽예남 할머니 향해 '다정한 미소' (천안=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곽예남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국립 망향의 동산은 해외동포들을 위한 국립묘원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유해도 안치돼 있다. 2018.8.14 scoop@yna.co.kr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광주·전남에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가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2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께 곽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94세. 지난 1월 28일 고(故)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33일 만이다. 이로써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2명으로 줄었다. 곽 할머니의 빈소는 전주병원 장례식장 VIP실 별관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4일 오전 9시이며 장지는 천안 망향의동산에 마련된다. 곽 할머니는 1925년 전남 담양에서 2남 4녀 중 3녀로 태어났다. 1944년 봄, 동네 여성 5명과 뒷산에서 나물을 캐고 있다가 일본군 순사에게 폭력적으로 연행됐다. 만 열 아홉의 나이였다. 중국으로 끌려간 곽 할머니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일본군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세 차례씩 방에 있는지 검사를 받아야 해 도망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일본의 패전으로 풀려난 곽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구걸하는 삶을 살다가 안후이성 숙주에 정착했다. 60여년을 중국에서 살면서도 조선 국적을 바꾸지 않는 등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다. 이후 한 방송사의 공익예능프로그램과 한국정신대연구소 도움으로 2004년 국적을 회복하고 가족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기쁨도 잠시, 곽 할머니는 20...

"위안부 피해 곽예남 할머니 이용 말라"..주변인 수사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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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네이버   곽예남 할머니 손 꼭 잡은 문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돕고 있는 시민단체가 곽예남 할머니 주변인들에 대해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광주나비는 26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른바 봉침 목사로 알려진 이모 목사와 조카가 위안부 피해자 곽 할머니를 이용한 정황이 방송에 보도됐다"며 "많은 사람이 이들의 수상한 행적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그동안 방송이 지목한 주변 인물들이 할머니를 이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해왔지만, 자칫 할머니의 명예가 훼손될까 섣불리 공론화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의혹이 조용히 묻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삶이 더는 불행해지지 않도록 정부와 지역사회가 할머니를 보호해야 한다"며 "정부와 수사기관은 방송에서 제기한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이 목사가 수양딸이 되는 과정에서 할머니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됐는지, 할머니에게 지원된 보조금과 위로금이 할머니의 생계·치료 등에 정당하게 쓰였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지난 23일 '봉침스캔들 목사의 수상한 효도' 편을 통해 곽 할머니에게 접근한 이 목사의 석연치 않은 행적을 방송한 바 있다. iny@yna.co.kr -------------------------------------- 관련링크 : 그것이 알고싶다 1157화 (‘봉침 스캔들’ 목사의 수상한 효도)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가 100통의 손편지를 썼다? 지난 2018년 12월 25일, 국회의원실과 전국의 지자체장 사무실 백여 곳에 봉투 하나가 도착했다.  봉투에 든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