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상하이인 게시물 표시

상하이서 잠든 '독립투사 김태연', 98년 만에 고국으로

이미지
다음 네이버 [앵커] 일제시대 독립투사들의 유해가 거의 한 세기 만에 조국으로 돌아옵니다. 독립을 보지 못하고 해외에서 생을 마감한 상하이의 김태연 지사 등 모두 다섯 분의 유해가 봉환될 예정인데요. 이 소식은, 김도엽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1921년, 임시정부 신년축하회 사진 속에 남아있는 김태연 지사의 모습입니다.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무장 항일단체 단원으로, 또 한인 학교의 교장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김 지사는 사진을 찍을 당시 이미 중병을 앓고 있었고 그 해, 30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상하이의 외국인 공동묘지인 '만국공묘'에 잠들어 있는 김태연 지사. 이곳에 함께 모셔졌던 박은식, 신규식, 노백린 선생 등 임정 주요 인사들의 유해는 한·중 수교 직후인 1993년 봉환됐지만, 김태연 지사는 당시 후손을 찾지 못해 절차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5년 전, 유족을 찾아낸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를 꾸준히 설득했고, 마침내 98년 만에 유해 봉환이 이뤄지게 됐습니다. [조관길/김태연 지사 외손자 : "김구 선생님하고 외조부 님(김태연 지사)하고 가깝게 지냈던 그런 얘기들을 (어머니가) 많이 하셨습니다. 좀 일찍 찾아뵀어야 하지 않았었나, 이런 생각이 들고."] 오늘(28일) 수습된 김 지사의 유해는 화장 절차를 거쳐, 다음 달 초 고국으로 봉송됩니다. 국가보훈처는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있는 계봉우, 황운정 지사, 미국에 남아있는 강영각, 이재수 지사의 유해도 함께 봉환할 예정입니다. 김태연 지사 등 다섯 분의 독립지사는 다음 달 9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영면에 들어갑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김도엽입니다. 김도엽 기자 (yop21@kbs.co.kr ) -------------------------------- 중국에서 항일활동을 하다 중국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투사분들의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영면에...

[단독] 靑, '4·11' 임시정부 수립일 '임시공휴일' 추진

이미지
다음 네이버 [앵커] 청와대가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1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3.1운동과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뿌리는 상하이 임시정부에 있다는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섭니다. 역사적 의미를 담아 임시공휴일을 정하는건 현 정부 들어 처음입니다. 김지선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100년 전 3월 1일. 빼앗긴 땅 곳곳에서 자주독립을 선언한 만세 운동이 들불처럼 일었고, 민중이 이 나라 주인이라는 3.1 운동 정신은 한 달 뒤인 4월 11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습니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임시 헌장을 공포한 날입니다. [문재인 대통령/2017년 12월 : "(헌법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그렇게 명시를 하고 있습니다.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건국의 시작으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올해 임시정부 수립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3.1 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뿌리는 임시 정부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소모적인 건국절 논란을 종결시킨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지난해까진 4월 13일로 지정돼 왔지만 11일이 맞다는 역사적 근거가 추가로 발견돼 올해 처음으로 이날 기념식이 열립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 30년 만입니다. [이낙연/국무총리/지난해 4월 : "국호와 임시 헌장을 제정하고 내각을 구성한 4월 11일이므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임시공휴일은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재가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확정됩니다. 정부는 소비 진작을 위해 재작년 10월 2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한 적은 있지만, 역사적 의미를 담아 공휴일을 정하는 건 현 정부 출범 이후 이번이 처음입니다. 청와대는 기획재정부, 고용노...

99년 만에.. 애국지사 아내 넘어 여성 독립운동가로

이미지
https://news.v.daum.net/v/20181008212804022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386419 한도신 여사, 건국훈장 애족장/남편 김예진 선생과 항일 투쟁/온갖 고초에도 공훈 인정 못받아/정부 재평가 통해 올 광복절 추서 항일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독립운동가 김예진 선생의 아내로 불렸던 한도신 여사가 99년 만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8일 부산지방보훈청에 따르면 지난 5일 한 여사의 작은 딸 김순명(85)씨가 어머니를 대신해 부산시 해운대구 자택에서 훈장을 받았다. 1895년 평남 고평에서 태어난 한 여사는 스무살에 김예진 선생과 결혼했다. 1919년 2월28일 남편의 3·1운동 거사를 도와 재봉틀로 대형 태극기를 제작한 후 갖은 고초를 함께 겪었다. 1922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도왔다. 김예진 선생이 참여한 평남도청 폭탄 투척 의거에 사용할 폭탄을 운반하는 활동을 했으며, 조선 유학생들을 돌보며 기독교 여자절제회를 이끌었다. 1938년 김예진 선생이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뒷줄 왼쪽부터 장남 동명, 김예진 선생, 장녀 선명, 차녀 재명. 앞줄 왼쪽부터 3녀 광명, 4녀 순명, 한도신 여사, 차남 동수.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1986년 92세에 세상을 떠난 한 여사는 생전 남편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며 당한 고난을 글로 남겼다. 1200매 분량의 육필 원고는 ‘꿈갓흔 옛날 피압흔 니야기’로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 여사는 그동안 국가로부터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받지 못했다. 남성 독립운동가를 뒤에서 도왔던 여성들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다 독립운동가 발굴 사업이 남성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내년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앞두고 정부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재평가하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