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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북한, 5·18 때 공작원들에 광주 가지 말라는 지령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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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네이버 [탈북 대남 공작원 “北, 5ㆍ18 개입 안 했다”] “광주 예측불허, 상황 관리 안 된다”며 1980년 서울 침투 교관 증언 공작원ㆍ전투원 양성 정치군사大, 5ㆍ18 대응 실패 복기 후 별동대 100명 양성 지만원 등 北 개입 주장은 틀려… 일부 탈북민, 헛소문 듣고 틀린 주장 1980년대 평양시 형제산구역. 정확한 연도는 말할 수 없다. 그 곳에 자리 잡은 북한의 조선노동당 산하 금성정치군사대학(이하 정치군사대학)에서 30대의 한 젊은 교관은 공작원 교육을 받던 학생들에게 또렷하게 말했다. 그 교관은 1980년 대만인 유학생으로 위장해 남한에 침투해 있던 인물이었다. “광주폭동(5ㆍ18민주화운동) 때 내가 서울에 있었는데, 광주에 우리(공작원들)가 모여야 하는지를 (상부에) 물었더니, ‘지금 예측불허다.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몰살이라도 당하면 큰일나기 때문에) 가지 말라’는 답을 들었다”는 것. 북한에서 5ㆍ18민주화운동은 광주폭동, 광주봉기로 불린다. 당시 젊은 학생으로 정치군사대학에서 교육받았던 김정찬(가명)씨는 아직도 그 교관의 말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북한 공작원 출신 김정찬(가명)씨가 자신이 교육받았던 북한 금성정치군사대학의 지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진희 기자 한국일보는 북한 정치군사대학 출신 탈북민인 김정찬씨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5ㆍ18 때 북한이 개입했다’는 일부 극우 세력들의 주장은 완전히 틀린 말이라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일명 ‘130연락소’로 불리는 정치군사대학은 1970,80년대 북한이 국가차원에서 대남 공작원과 특수전투원을 양성했던 곳이며 남한 정세와 사회상에 대해서도 수시로 교육을 시킨다. 현재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통합됐다. 80년대 정치군사대학은 수업과 교재로 북조선이 ‘광주폭동’ 대응에 실패한 이유를 교육했고, 향후 비슷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100명의 별동대원 양성에까지 나섰다. 50대의 김씨는 “탈북민 중에도 5ㆍ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