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심재철 사태 언급 꺼리는 이유
https://news.v.daum.net/v/20181007150602021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427518 엄지원의 여의도민 탐구생활 [한겨레] 10월1일 국회 정론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한겨레 강창광 기자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서사를 끌어간 힘은 ‘러브’만이 아니다. 굴곡진 역사가 강요한 ‘선택’의 순간에 각 인물이 내딛는 발걸음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비겁하게 살아남는 일과 영예롭게 죽는 일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패배가 불 보듯 뻔한 때에도 싸울 것인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벗을 지킬 것인가. 그런 순간에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애기씨(김태리)처럼 담대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할 것이다.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도 그랬을 것이다. 그해 6월30일 신군부로부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자백하라 강요받으며 두들겨맞을 때, 그는 선택해야 했다. 재판정에서 심재철은 ‘김대중씨한테 자금을 받았고, 이해찬(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김대중 집권을 위한 거리시위를 지시했다’는 취지의 거짓 진술을 했다. 그때 이해찬은 “너 미쳤어? 너 왜 그래!”라며 울부짖었다 한다. 나중에 심재철은 “내가 폭력 앞에 어이없이 무너졌다. 차라리 철저히 무너져서 이제는 일어서지도 말어라”라고 후회의 자술서를 썼다. 감히 돌을 던질 수 없다. 혹독한 고문 앞에서라면 나도 형편없이 무너질 것이다. 중요한 건 그다음 이야기다. ‘이제 일어서지도 말자’고 자책하던 심재철은 그의 별명 ‘오뚝이’처럼 일어서고 말았다. ‘동지들’ 곁으로 다시 돌아오진 못했다. 문화방송(MBC) 기자를 거쳐,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보수정당의 ‘공안몰이’ 국면 때면 이념 감별사처럼 앞장섰다. 그리 살아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