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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 꿈' 7광구 자원개발도..한일협력위가 영향력 행사 / 독소조항에 '7광구' 30년째 방치..9년 뒤 일본에 넘어갈 수도

다음 네이버 1972년 양국 공동 개발에 합의..상황 바뀌자 발 뺀 일본 [앵커] 아베가 입을 열때마다 거론하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 그러나 그 협정으로 들어온 돈이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였는가 즉, 일본의 전범기업이 개입해서 그 배를 불리는 데에 쓰였다는 사실을 저희는 지난 이틀간의 보도로 전해드렸습니다. 어제(7일) 예고해드린대로 지금부터는 '원조'로 가장한 8억 달러로 일본이 우리 자원개발 사업에도 영향을 미친 정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970년 박정희 정부는 제주도 남쪽 대륙붕 지대, 이른바 '제7광구' 개발을 선포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지요. 그 당시 국민들은 산유국의 꿈에 부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72년 한·일 양국은 이 7광구를 공동 개발하기로 전격 합의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일본 협력기금 8억 달러를 앞세웠던 한·일협력위원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맺은 독소조항으로 7광구는 30년 넘게 방치되고 있고, ...

한일협력위 '해결사' 역할..박정희-일본측 면담록에 고스란히 / 일본 이익 챙긴 '한일협력위'..주축은 전범기업 임원 / 훈장 받은 'A급 전범'..한일 양측에서 이익 챙긴 '협력위' / '8억달러 사업' 넘어..'협력위' 한국 정치에도 영향력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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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네이버 '원조로 포장된 일본 8억달러' 탐사보도 [앵커] 어제(5일) 예고해 드린대로 지금부터는 '원조'로 포장됐던 8억 달러를 앞세워서 우리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키려 했던 한·일협력위원회의 실체에 대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보도는 저희가 입수한 1973년 9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일협력위 일본측 위원들의 면담록입니다. 당시에 김대중 의원 납치사건으로 한·일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된 상황이었지요. 지금까지는 그 해 11월에 김종필 당시 총리가 박 전 대통령 친서를 일본에 전달해서 얼어붙었던 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면담록을 보면 두 달 전에 이미 한·일협력위가 '해결사' 역할을 했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먼저 이태경 기자입니다. [기자]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그랜드팔레스 호텔. 당시 유신을 반대하며 일본에 머물렀던 김대중 의원이 괴한들에게 납치됐습니다. 한국 정보기관이 개입한 증거가 나오자 일본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