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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北이 유혈사태 유도"..5·18 망언 뿌리는 계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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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네이버 <앵커> "80년 광주에 북한군이 활동했다" 이 망언, 뿌리가 어딘지 저희 취재팀이 확증을 잡아냈습니다. 범인은 계엄군이었습니다. 시민들이 총을 들기 전이었던 80년 5월 19일, 군이 공수부대를 동원해서 폭력적인 진압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무장공비가 들어왔다는 얘기를 퍼뜨리기 시작한 문서를 찾은 겁니다. 당시 신군부가 시작부터 광주 시민들을 북한하고 엮으면서 무슨 짓을 벌이든 정당한 행동이라고 주장하려는 의도로 읽힙니다. 권지윤 기자의 단독보도 보시죠. <기자>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직후 계엄군이 작성한 '대학 총학장을 대상으로 한 북괴 및 국내 정세'라는 제목의 문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기로 작성된 이 문건은 5월 19일, 전국 대학 관리자를 모아두고 당시 계엄처장이 발언한 내용을 정리한 겁니다. 문건에서 계엄처장은 "북한이 무장공비를 대량 침투시켜 군과 학생 쌍방을 저격해 극한적인 유혈 사태를 유도하려한다"고 말합니다. 또 "북한이 반정부 투쟁을 강화하기 위해 군중 속에 점화 기폭조를 잠입하도록 기도"하고 "시위대를 거리로 유도, 재야 세력 중 중요인물을 암살해 폭발적 반발을 유도하려 한다"며 5·18은 북한군이 유도한 폭동이라고 강변합니다. 기무사가 보관하다가 지난해 국방부 특별조사위에 넘긴 문건으로 5·18을 북한군과 연관 지으려는 당시 계엄군의 왜곡과 선동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가입니다. [김병기/더불어민주당 의원 : 5·18 직후 전두환 신군부가 민주적 항쟁의 의미를 훼손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거짓 선동의 결과물입니다.] "북한이 5·18을 제2의 4·19로 유도하고 있다"고도 적어 뒀는데 4·19혁명부터 5·18항쟁까지 모두 북과 연결지으려는 군부의 왜곡된 의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극우가 주도하는 왜곡 날조의 시작은 39년 전 계엄군였다...

이해찬이 심재철 사태 언급 꺼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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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v.daum.net/v/20181007150602021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427518 엄지원의 여의도민 탐구생활 [한겨레] 10월1일 국회 정론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한겨레 강창광 기자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서사를 끌어간 힘은 ‘러브’만이 아니다. 굴곡진 역사가 강요한 ‘선택’의 순간에 각 인물이 내딛는 발걸음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비겁하게 살아남는 일과 영예롭게 죽는 일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패배가 불 보듯 뻔한 때에도 싸울 것인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벗을 지킬 것인가. 그런 순간에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애기씨(김태리)처럼 담대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할 것이다.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도 그랬을 것이다. 그해 6월30일 신군부로부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자백하라 강요받으며 두들겨맞을 때, 그는 선택해야 했다. 재판정에서 심재철은 ‘김대중씨한테 자금을 받았고, 이해찬(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김대중 집권을 위한 거리시위를 지시했다’는 취지의 거짓 진술을 했다. 그때 이해찬은 “너 미쳤어? 너 왜 그래!”라며 울부짖었다 한다. 나중에 심재철은 “내가 폭력 앞에 어이없이 무너졌다. 차라리 철저히 무너져서 이제는 일어서지도 말어라”라고 후회의 자술서를 썼다. 감히 돌을 던질 수 없다. 혹독한 고문 앞에서라면 나도 형편없이 무너질 것이다. 중요한 건 그다음 이야기다. ‘이제 일어서지도 말자’고 자책하던 심재철은 그의 별명 ‘오뚝이’처럼 일어서고 말았다. ‘동지들’ 곁으로 다시 돌아오진 못했다. 문화방송(MBC) 기자를 거쳐,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보수정당의 ‘공안몰이’ 국면 때면 이념 감별사처럼 앞장섰다. 그리 살아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