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은 면죄부가 아닌 사회악"..불붙은 주취감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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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주취감형 폐지 여론 확산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났을 때 가해자의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호소하는 이른바 ‘주취감형’에 대한 반발여론이 뜨겁다. 음주운전은 ‘도로위의 살인행위’라고 불릴 정도로 치명적인 반면 처벌 수준은 벌금형 등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른 한 음주운전 피해자 지인의 사연은 누리꾼들의 공감을 받으며 25만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지난 10일에는 배우 백성현이 동승한 차량이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음주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졌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도 10일 주취감형에 대한 개선을 주문했지만 일각에서는 모든 범죄에서 음주를 심신미약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신중해야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다”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음주운전으로 친구 둘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한 청원자의 사연이 올랐다. 지난 9월 새벽 부산 해운대구 미포 오거리를 건너기 위해 인도에 서있던 청원자의 친구 A씨와 현역군인 B씨는 술에 만취한 박모(26)씨가 모는 차량에 부상을 입었다. A씨는 인근 담벼락 아래로 떨어져 고통을 호소했고 B씨도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져 뇌사판정을 받았다는 게 청원자의 설명이다.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음주운전 피해 사연.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이들을 덮친 박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81%의 음주상태였다. 청원자는 “사고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가해자 측과 동승자 모두 사과조차 하러 오지 않고 그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은 상태”라며 “한 가정을 무너뜨리고도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반인륜적인 가해자 측의 태도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고 분노했다.
그는 이어 “너무나 아까운 친구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를 보호해야할 법이 가해자만을 지켜주고 있음에 울분을 토로하는 심정”이라며 주취감형을 폐지하고 음주운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배우 백성현. 출처=인스타그램

누리꾼들은 “음주운전이 왜 끊이지 않는지 생각해봐야한다” “음주운전은 면죄부가 아닌 사회악”이라며 이에 공감해 청와대 청원은 올라온 지 3일 만에 답변기준인 20만을 돌파했다. 경찰은 논란이 커지자 지난 9일 박씨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 계획을 밝혔다. 지난 10일에는 배우 백성현씨와 여성 C씨가 차량으로 경기도 고양시 제1자유로를 달리다 미끄러져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당시 운전대를 잡은 C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08%로 면허정지 수준이었고 백씨도 만취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해양의무경찰로 복무 중인 백씨가 음주운전을 방조했다는 점에서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文 “음주운전은 실수 문화 끝내야” 강력대응 예고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연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청원이 말하는 대로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상인행위가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음주운전 재범률이 45%에 달한다는 통계를 들며 “이제는 음주운전을 실수로 인식하는 문화를 끝내야 할 때”라고 변화를 예고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음주운전은 6만685건이 발생했고 그중 2만8009건(44%)이 재범 사고였다. 음주운전이 상습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재범사고 중 1만1440건(40.8%)은 음주사고 전력이 3회 이상인 운전자에 의해 발생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동승자에 대한 적극적 형사처벌, 상습 음주운전자 차량 압수와 처벌 강화, 단속기준을 현행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로 강화하는 방안 등을 추진 중이지만 이것만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수 있을지 되짚어 봐야겠다”며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 특성상 초범이라 할지라도 처벌을 강화하고, 사후 교육시간을 늘리는 등 재범 방지를 위한 대책을 더욱 강화해 달라”고 강력히 주문했다.

◆법조계도 감형조항인 형법 10조 점검 나서

법조계도 음주운전에 대한 양형기준에 대한 논의에 나서기로 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소속 양형연구회는 내달 19일 오후 2시 대법원에서 ‘음주로 인한 감경 또는 가중의 여러 문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로 했다. 현행 형법 10조 2항에 따르면 술을 마셔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의 상태가 된 경우 그 행위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3항에 따라 주취감형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자리에선 음주운전에서 음주여부를 감형사유로 두지 않고 형의 가중인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특히 범죄의 양형기준은 ‘고의성’에 의해 좌우되는데 음주상태에서 판단을 어디까지 심신미약으로 인정해야하는 지도 논쟁점이다. 현재 성범죄의 경우는 2013년 개정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20조에 따라 법관의 재량으로 심신 미약 감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형평성 고려 신중해야” vs “음주운전 강한 경고 필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해 주취감형 폐지 청원이 20만명을 넘자 청와대 답변에서 “형법상 주취감형 조항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감경사항에 관해 함께 규정하고 있어 규정 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쳤다. 형법에는 일반 심신미약 기준과 음주가 같은 선상에 있어 조항을 아예 삭제하기는 쉽지 않을 거란 지적이다. 다만 “아예 음주를 심신장애 범주에서 제외하는 입법논의도 시작될 전망”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1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주취감형을 폐지해 강한 경고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음주로 자기가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음주운전은 흉기를 들고 달리는 것과 같다”며 “음주운전으로 피해자는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는 만큼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음주로 인한 실수라 하기에는 사회에 미치는 피해가 너무 크다”며 “사회의 부정적 영향을 생각해 감형이 용인돼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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