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판’ 칼럼 쓴 산케이 기자는 무죄인데…전단 뿌린 박 씨는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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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12-22 20:45수정 :2015-12-24 18:27


‘대통령 비판’ 칼럼 쓴 산케이 기자는 무죄인데…전단 뿌린 박 씨는 유죄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8개월 동안 구속돼 1심 재판을 받아온 박성수씨가 22일 집행유예형을 선고받고 대구구치소를 나오며 마중을 나온 변홍철(46)씨와 함께 웃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산케이 기자 ‘무죄’ 받았는데…언론 보도 보고 전단 만든 박 씨는 ‘유죄’

“국정운영 방식 비판 풍자가 어떻게 박 대통령 명예훼손인지 이해 안 돼”

‘정윤회 염문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 ‘도대체 박근혜와 정모씨는 어떤 관계여서 이런 황당한 사건이.’, ‘정윤회 염문 덮으려 추악한 짓 멈추지 않네. 독재자 딸 박근혜는 그 애비보다 더하구나.’ 박성수(42)씨가 만든 전단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내용이다.

그는 박 대통령 명예훼손죄로 재판에 넘겨져 22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증권가 관계자에 의하면, 그것은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상대는 대통령의 모체, 새누리당의 전 측근으로 당시는 유부남이었다고 한다.(생략) 박 대통령의 비선은 정씨를 염두해 둔 것으로 보인다.’ 가토 다쓰야(49)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조선일보> 칼럼을 바탕으로 쓴 칼럼의 내용이다. 그는 박 대통령 명예훼손죄로 재판을 받았지만 17일 무죄를 선고 받았다.

집행유예형을 선고 받고 22일 낮 12시께 대구구치소에서 8개월만에 풀려난 박씨는 <한겨레> 기자와 만나 “나는 <조선일보>와 일본 <산케이신문> 등 언론 보도를 보고 전단을 만들었는데 나만 유죄를 선고받았다. 과거에도 새만금간척사업이나 부안 핵폐기장 반대 전단을 만들어서 뿌리고 다녔는데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 비판을 하기위해 전단을 만들어 풍자를 한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구지법 형사2단독 김태규 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국가정책 또는 공직자 직무 수행 등에 대한 비판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로 충분히 보장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권장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상식적이고 건전한 문제제기 없이 음란하고 저속한 사진이나 글, 그림 등을 통해 공직자 개인을 비방하는 데만 치중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벗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박씨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박씨로부터 전단을 받아 새누리당 대구시당 들머리에서 뿌리는 행위극을 한 변홍철(46)씨와 신아무개(34)씨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해 각각 벌금 500만원과 100만원이 선고됐다.

박씨의 변호인단은 재판에서 “박씨가 만든 전단 내용은 비판적인 의견의 표명일 뿐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고 본다. 설령 사실의 적시라고 본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관한 비판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에 나와 있다”라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씨는 선고를 앞둔 이날 아침까지만해도 자신이 풀려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6월15일 재판부에 낸 보석 청구가 기각됐다. 1심 재판을 받으며 구속 기간이 길어지자 풀려날 수 있다는 기대를 접었다고 했다. 그동안 독방에 갇혀있는 그를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면회를 오거나 편지를 보냈다.

그는 “갇혀있으며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일부러 자주 웃기위해 노력했다. 편안하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담담해다. 사실 전단을 만들었다고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너무 유명세를 타게 돼서) 검찰에게 감사 편지도 보냈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둥글이의 유랑투쟁기>라는 책을 낸 환경운동가다. 2006년 8월부터 전국을 유랑하며 이 책을 썼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사회복지시설과 환경단체에서 일하기는 했지만 회의를 느껴 혼자 전국을 돌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으며 경찰이 출석을 요구하자 개사료와 기저귀를 보냈다. 경찰서 앞에서 수사에 항의하며 개사료를 뿌리기도 했다.

그는 “나는 재미있게 웃어 넘겨주는 이런 방식의 활동을 주로 한다. 쇠파이프를 들 수는 없지 않느냐. 그래야 나도 덜 지치고 활동의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 활동하는 나에게는 전단이 최고의 무기며 앞으로 계속 활동을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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