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 손배 대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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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03-26 22:02수정 :2015-03-26 22:45

대법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 손배 대상 아니다”


사실상 면죄부…2010년·2013년 위헌 선고 뒤집은 셈

대법원이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 자체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여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정도의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놨다. 

국민의 기본권을 말살한 위헌적 긴급조치에 대해 ‘통치행위’라며 사실상 면죄부를 준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는 26일 긴급조치 9호 위반을 이유로 영장 없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20일간 구금당한 최아무개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패소 취지로 깨어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박 전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 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최씨는 서울대에 다니던 1978년 하숙집에서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20일 동안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친구에게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낸 이유’ 등에 대해 조사받았다. 

최씨는 2011년 4월 국가를 상대로 불법 구금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최씨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명백히 위배되어 위헌이다. 긴급조치 9호를 발령한 행위는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대통령에게 고의 내지 과실이 인정된다”며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긴급조치를 적용한 수사·재판은 그 자체로는 불법행위가 아니어서 손해배상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비슷한 맥락이지만, 2013년 대법원이 긴급조치를 위헌·무효라고 선고한 것을 스스로 뒤집은 셈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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