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긴급조치는 위법행위”…대법에 반기든 하급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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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긴급조치는 위법행위”…대법에 반기든 하급심

등록 :2015-09-16 20:00수정 :2015-09-17 10:49


광주지법 이어 서울중앙지법도

‘긴급조치 옹호’ 대법 판결 반박

피해자에 국가배상 책임 인정


대법원과 하급심의 판단 대립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은 불법행위가 아니어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정면 반박하는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은 과거 스스로 내놓은 판결마저 부정하며 긴급조치의 위헌성과 불법성을 부인했다는 지적을 받는데, 하급심 판사들도 이는 사법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나선 셈이다.

‘긴급조치 면죄부’ 논란은 지난해 10월 촉발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가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손해배상 사건에서 “당시엔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로 선언되지 않았으므로 긴급조치로 인한 복역은 국가기관의 불법행위가 아니다. (고문 등) 공무원의 위법행위로 유죄를 받았음이 입증돼야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대법원이 2013년 “긴급조치 9호는 당시 유신헌법에 비춰 봐도 위헌·무효”라고 한 선언을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하급심에서 배상 청구를 기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올해 2월 광주지법 목포지원 민사1부(재판장 이옥형)가 이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재판부는 “위헌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긴급조치가 발령되고 그에 따른 집행이 이뤄졌다면 개별 공무원들의 과실이 끼어들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국가의 불법행위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렇게 해석하지 않을 경우 국가는 형식적 법치주의 논리 아래 중대한 불법을 저지르고도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이는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있다’는 현대 민주국가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가 2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달 뒤 대법원은 더 노골적으로 긴급조치를 ‘옹호’하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긴급조치 9호가 사후적으로 위헌·무효가 선언됐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다. 대통령은 긴급조치권 행사에 정치적 책임을 질 뿐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자 이를 다시 치받는 하급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재판장 김기영)는 지난 11일 이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헌법의 문헌에 명백히 위반되는 긴급조치 9호 발령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고의 내지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어 “발령 행위는 집행을 당연히 예정하고 있으므로, 긴급조치 9호 관련 수사·판결·복역으로 입은 피해는 긴급조치 발령 행위로 인한 것”이라면서 교도소 복역 중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비판해 긴급조치 9호에 의해 처벌받은 송아무개씨와 가족들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거듭 내놓은 판례를 하급심이 정면으로 치받으며 따르지 않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런 판결은 결국 고등법원 또는 대법원에서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만큼 일선 판사들과 대법관들의 견해차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법원 판결이 하급심에서 비판받는 이유는 배상 청구권을 제한하기 위해 국가폭력을 옹호하는 데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법조계의 한 고위 인사는 “배상 규모 축소도 일면 타당성이 있으니, 기준을 정해서 적용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이 아예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사법부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6일 서울중앙지법 판결에 대한 성명을 내어 “긴급조치를 ‘고도의 정치행위’라고 옹호하는 대법원의 논리는 동일한 내용의 긴급조치가 발동되면 여전히 유죄 판결을 하겠다고 호언하는 것과 같다”며 “대법원 판결에 부응했던 하급심 재판부의 성찰과 대법원의 전향적 판결을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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