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차례 성추행 때마다 신고 대신 “감사합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00243
[앵커]
이번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의 '죽음'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숨겨진 피해는 더 많을지 모릅니다.
KBS는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성범죄 문제를 다각도로 취재했습니다.
먼저, 지난 5년동안 군에서 일어난 성범죄 사건 가운데 인터넷 열람이 가능한 판결문을 모두 분석했습니다.
또 다른 성범죄 피해자의 증언도 들었는데 방송으로 전해드리기 불편한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돼있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고, 더 많은 피해를 막기 위해 고민 끝에 보도를 결정했습니다.
신선민 기잡니다.
[리포트]
["어디야"]
["3분대, 3분대로 가겠습니다"]
지난해 해병대 병사 A씨가 선임병과 주고받은 휴대전화 메시지, 선임이 부른 곳에 가면, 성추행이 시작됐습니다.
[A씨/해병대 예비역 : "생활관에 있다가 자기 **를 보여준다든가 꼬집고 절… 샤워하면 제 옆에 오줌 싸고 침 뱉고, 동상처럼 세워놓고 **를 만진다든지 뺨 때리고 침 뱉고 얼굴에…"]
["언제 샤워할 거야"]
["감사합니다"]
강제로 당한 상황인데, "감사하다"고 답변해야 했습니다.
["뭐든지 선임이 해주면 '감사합니다'가 나오게끔… 해병대 안에 룰이라고 하죠. '그런 악질적인 걸 다 참아내는 게 해병이다', 이러면서."]
멈춰지지 않았고, 수위는 점점 세졌습니다.
["짧은 머리채 세게 잡아서 침상에 던지고 엎드리게 한 다음에…"]
1심 군사법원이 인정한 지난해 상반기 강제추행 횟수만 134차례.
가장 힘든 건 선임병 여럿이 괴롭힐 때였다고 합니다.
[A씨/해병대 예비역 : "생활관에 누워있었는데 3명이서 갑자기 저한테 와서 한 명은 제 팔을 잡고 한 명은 다리 잡고 한 명은 바지 벗기고…"]
6개월을 당하다 결국 외부에 피해사실을 알렸는데 돌아온 건 상관의 질책이었습니다.
["신고한 날 밤에 대대장님이 불러서 얘기하는데 '도대체 어디 신고한 거길래 사단장님 귀로 먼저 들어간 거냐. 너는 보고체계 안 지켰기 때문에 신고한 거에 대해 끝나고나서 너 징계 받아야 된다'."]
전역한 뒤에도 상처는 씻기지 않고 있습니다.
["군대 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도 솔직히 매일 생각나거든요. 정신과 치료를 하는데 군대 안에서 당하고 데고 나오니까 아예 시작을 못 하겠어요 조직 생활을 못 하겠어요. "]
가해자 3명 중 2명은 군사법원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습니다.
[A씨/해병대 예비역 : "제가 사과를 받지도 않고 용서 하지도 않았는데 판사들이 그런 높으신 분들이 임의대로 생각해서 나이도 어리고 뭐고 해서 집행유예라는 걸 내려준 거잖아요. 그게 전 너무 억울하죠 진짜."]
KBS는 군사법원 판결문 열람 서비스를 통해 공개된 군 성범죄 사건을 분석했습니다.
최근 5년간 군형법상 강제추행, 성폭행으로 검색해서 나온 육해공군과 해병대, 국방부 1심 판결문 200건이 대상입니다.
고 이 중사와 해병 사례 같은 강제추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군의 특수성이 드러나는 대목인데, 남성 간 성범죄가 60%를 차지했습니다.
가해자-피해자 관계가 나타나있는 판결문들을 추려보니, 80% 이상이 가해자가 상급자인 경우였습니다.
하급자가 상급자에 대해 범행한 건은 남성이 가해자일 때가 대부분이었다는 점, 눈에 띕니다.
동료 간 이뤄진 성범죄는 10% 정도였습니다.
범행 당시 가해자가 음주 상태였던 게 5건 중 1건 정도였고, 대부분 군 내 성범죄 사건은 밤에 일어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상습범행을 한 경우가 118건으로 60%에 달했다는 겁니다.
앞서보신 해병 사례처럼 범행은 멈추지 않고 장기간 반복되지만, 피해자는 초기 신고를 주저했단 뜻입니다.
[김숙경/군성폭력 상담소장 : "(신고해서) 가해자가 엄벌 처해진다는 게 확인되거나 아니면 그런 사례가 있을 때 안심을 하고 (신고)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죠."]
그래서 처벌은 어떻게 되나 살펴봤습니다.
실제 형이 선고된 경우는, 13%에 불과했습니다.
70% 가까이 집행유예가 나왔고, 선고유예가 8%, 집행유예, 선고유예 건수가 실형 선고보다 6배나 많습니다.
군대 내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기도 합니다.
KBS 뉴스 신선민입니다.
자료조사:백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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