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재조명 토론회, 논란은 컸지만 정작 알맹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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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폄훼' 토론회 강행한 이진숙…5분도 못 가 '아수라장'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이 국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하자며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진숙 의원은 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했으며 주대환씨는 축사로 나섰고.. 이영훈, 김용삼, 주동식 이 3명은 발표자로 나섰습니다. 그들의 발표문 전문은 새역사국민운동의 홈페이지에서 공개중입니다.

참고링크 : (서울)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 취지문,발표집 첨부

 

토론회에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재조명을 내세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재해석을 하였습니다. 그 해석내용중에는 기존에 확인된 부분을 왜곡하는 사례도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발표자들이 아무런 주장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발표문에는 기존의 5·18 해석과 다른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그 주장이 기존의 판단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와 자료를 제시한 것인가입니다. 발표문을 살펴본 결과 제가 확인한 범위에서는 그러한 새로운 근거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발표자로 나선 이들은 자유민주 이념에 입각하여 광주정신의 역사적 실체를 규명한다 주장합니다. 그런데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는건 정작 이념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걸 간과한 결과가 보도내용입니다.

1. 보도내용 정리

공동주최자로 나선 이영훈은 5·18이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며 좌파세력이 독점하는 문화권력을 해체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김영삼 펜앤마이크 기자는 강경진압을 거부한 탓에 시위가 격화한 것이라며 당시 군부의 진압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현장을 찾은 이들중.. 발표자들의 발표내용에 대해 반발하여 고성이 터졌고.. 그로인해 발표는 여러차례 중단되었습니다.

이 토론회에 대해 민주당은 주최자인 이진숙 의원의 제명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징계를 촉구했습니다. 이진숙 의원의 소속당인 국민의힘은 원내지도부에서 여러차례 토론회를 열지 말라달라 당부했다고 밝혔습니다. 토론회에 대해 당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긋는 입장을 냈습니다.

2.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란

이진숙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재조명입니다. 재조명(再照明)은 어떤 대상, 사건, 인물 등을 새로운 시각이나 기준으로 다시 살펴보거나 평가하는 것을 뜻합니다. 과거에 주목받지 못했거나 잘못 알려진 가치를 새로 발견할 때 주로 씁니다.

 

그런데 재조명을 할 때라도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확정된 사실입니다. 확정된 사실을 뒤집고.. 다른 해석을 내놓을려면 이를 입증하는 자료를 제공해야 합니다. 토론회에서 내놓은 주장에는 이 부분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발표자는 이영훈, 김영삼, 주동식.. 세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토론자는 세사람에 이강호, 최진덕 두 사람이 추가 되었습니다. 

2-1 이영훈 발표자의 내용

이영훈 발표문의 제목은 「광주정신, 그 역사적 실체는 무엇인가」이며, 학술대회 취지문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핵심 문제의식은 5·18을 단순한 1980년의 역사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현재 한국 정치와 역사인식까지 규정하는 정치·역사적 사상으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발표문은 크게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습니다.

5·18에 부여된 ‘광주정신’의 의미를 규정 → 그 역사관의 기원을 김대중과 연결 →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역사에 대한 평가를 반박 → 광주정신의 이념적 요소를 분석 → 그것이 이후 주체사상 및 좌파 정치세력과 결합했다고 주장


따라서 이영훈의 발표는 단순히 "1980년 5·18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밝히는 발표라기보다는, 5·18을 둘러싸고 형성된 역사인식과 정치적 의미를 비판하는 발표에 가깝습니다.

이영훈의 발표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언급됩니다. 

이영훈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민중·민족주의와 연결된 광주정신을 다섯 가지 요소로 분류합니다.

① 자본과 시장에 대한 저항

그는 이를 대중경제론과 연결합니다.

즉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광주정신의 한 요소로 봅니다.

② 지역감정

선행 개발된 경기도와 경상도에 대한 전라도민의 불평이라는 형태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지역적 소외감과 경제적 격차에 대한 불만 역시 광주정신의 구성요소로 규정합니다.

③ 민족통일론

김대중의 3단계 평화통일론을 언급하면서 이를 이영훈이 표현한 ‘환상적인 민족통일론’으로 평가합니다.

④ 반일 종족주의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하나의 이념적 요소로 규정합니다.

⑤ 문민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지식인의 불편한 자존심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를 문민주의와 연결합니다.

결국 이 다섯 요소를 묶어서 이영훈은 광주정신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 자신의 역사관과 대립하는 이념적 체계로 해석합니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주체사상과 연결을 합니다.

 

이영훈은 광주정신이 1987년 이후 주체사상과 친화적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좌파 정치세력의 패권을 공고히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 평가합니다.

여기서 발표문의 논리가

김대중 → 광주정신 → 민중·민족주의 → 주체사상과의 친화성 → 좌파 정치세력의 패권

이라는 형태로 확장됩니다.

따라서 이 발표문에서 5·18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이후 한국 정치의 이념적 지형을 형성한 출발점으로 규정됩니다.

 

제공된 이영훈 발표문에서 핵심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 재구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5·18에 어떤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어 왔으며, 그 의미가 대한민국 현대사를 어떻게 규정했는가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영훈이 제시하는 전체적인 역사관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존의 5·18 중심 역사관

1948~1987년
→ 권위주의 독재
→ 불의한 대한민국
→ 5·18 민주항쟁
→ 민주화
→ 1987년 체제

 

라는 역사관을 거부합니다.

 

대신

 

1948 건국
호국
산업화·부국
권위주의적 민주정치
민주화

 

라는 연속적인 역사 발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5·18을 대한민국 현대사의 ‘불의한 체제에 대한 민주적 저항’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발표문의 핵심입니다.

2-2 김용삼 발표자의 내용

발표문은 현재 통용되는 5·18에 대한 설명을 먼저 제시한 뒤, 그것이 역사적 사실 전체를 충분히 설명하는지 문제를 제기합니다.

 

발표자가 제시하는 통상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두환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 이후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5·18 광주 투입을 계획했고, 이에 광주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자발적으로 저항했다.

 

이에 대해 발표자는 이러한 설명이 5·18의 전체 과정과 책임 소재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발표자가 제시하려는 대안적 관점은 크게 다음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1. 1980년 서울의 봄 자체가 정치권의 권력투쟁과 사회적 혼란으로 불안정했다.
  2. 5·17 시국수습방안은 발표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정권 찬탈을 목적으로 한 시나리오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3. 광주에서 사태가 급격히 악화된 데에는 계엄군 지휘관들의 작전상 판단과 경찰의 초동 대응 실패가 중요한 원인이었다.
  4. 5·18 이후 전두환에게 집중된 책임과 역사적 평가에는 1990년대 김영삼 정부의 정치적·사법적 처리 과정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즉 발표문은 「신군부의 계획적 학살 → 시민의 민주화 항쟁」이라는 단선적인 구도를 해체하고, 정치적 혼란 → 5·17 조치 → 광주에서의 초기 충돌 → 군 지휘체계의 잘못된 대응 → 무장 충돌 확대 → 사후 정치·사법적 재구성이라는 복합적인 과정으로 5·18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발표문 전체를 관통하는 책임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서울의 봄의 혼란

발표자는 1980년 정치권의 권력투쟁과 정부의 불안정성이 군부 개입의 환경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② 5·17

5·17은 발표자의 관점에서는 처음부터 정권 찬탈을 위해 만들어진 시나리오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③ 광주 초기 충돌

광주에서는 경찰의 초동 대응 실패와 공수부대의 부적절한 투입이 충돌을 확대했다고 봅니다.

④ 현장 지휘 실패

정웅·윤흥정 등의 잘못된 작전 명령이 공수부대와 시민의 충돌을 더욱 격화시켰다고 주장합니다.

⑤ 무장화

시민들의 무기 탈취와 차량·장갑차 등을 이용한 공격으로 사태가 무장 충돌로 전환되었다고 봅니다.

⑥ 철수 문제

5월 20일 밤 철수 승인이 있었음에도 철수하지 않은 윤흥정의 판단이 5월 21일의 유혈 충돌을 막을 기회를 놓친 것으로 해석합니다.

⑦ 지휘 책임

광주 진압의 공식적인 책임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군 지휘계통이었다고 봅니다.

⑧ 전두환

전두환은 정치적으로 신군부의 핵심 인물이었지만 광주 진압작전의 정식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으며 직접 지휘했다는 증거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⑨ 1990년대

김영삼 정부의 5·18 특별법과 이후 재판이 전두환에게 광주 사건의 역사적·법적 책임을 집중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발표문을 가장 압축해서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80년 정치권의 권력투쟁·정부 불안정

학생·재야 세력의 시위 확대

정부의 질서 회복 조치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김대중 등 주요 인사 체포

광주에서 학생과 공수부대 최초 충돌

경찰의 초동 대응 실패 + 공수부대의 부적절한 진압

정웅·윤흥정의 작전상 판단 실패

공수부대와 시민의 충돌 확대

무기고 습격·무기 탈취·차량 무기화

시위 → 무장 충돌로 성격 변화

5월 21일 발포 및 계엄군 철수

5월 27일 상무충정작전

1980년 정부 합동조사

현장 지휘관들의 책임 문제 제기

1990년대 12·12·5·18 재수사

5·18 특별법

전두환·노태우의 내란·군사반란 관련 처벌

현재의 5·18 역사 인식 형성

 

이것이 발표자가 제시하는 대안적 역사 서사의 기본 골격입니다.

 

따라서 이 발표문은 단순히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글로 보는 것보다는, 보다 정확하게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김용삼은 5·18을 둘러싼 기존의 '신군부의 계획적 정권찬탈과 시민의 자발적 민주화 항쟁'이라는 단일한 설명에 문제를 제기하고, 1980년 정치권의 권력투쟁과 정부의 불안정, 5·17 조치의 성격, 광주 현지의 경찰·군 지휘관들의 작전 실패, 시민의 무장화와 군의 대응, 그리고 1990년대 김영삼 정부의 사법적·정치적 처리 과정을 종합하여 5·18의 책임과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발표를 했다.

2-3 주동식 발표자의 내용

발표문의 핵심 명제는 제목인 「5·18이 1987체제 오염과 타락의 주범이다」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주동식은 5·18 자체를 단순히 1980년 광주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고,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사회·경제·문화 질서를 형성하고 변화시킨 핵심적인 정치적 상징자산으로 규정합니다.

 

발표문의 논리 구조를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5·18 → 호남과 주사파의 결합 → 1987체제에서 좌파 세력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 확대 → 호남 중심의 이익공동체 형성 → 정치·경제·인사·보훈상의 특혜 확대 → 5·18에 대한 성역화와 비판 억압 → 피해자 중심주의와 권력·보상 중심 정치의 전국화 →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가치에 대한 도전 → 1987체제의 오염·변질

그리고 발표문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최근 들어 한계에 도달했으며, 5·18의 사회적 권위가 약화되는 '황혼'이 시작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지막에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 우파가 취해야 할 태도를 제시합니다.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① 5·18에 무조건 굴복하는 태도를 버릴 것

우파 정치인이 5·18 묘역을 찾아가 사과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식의 행동을 비판합니다.

② 호남과 5·18을 비판할 것

다만 혐오가 아니라 비판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발표자가 제시하는 중요한 문장이 바로

"혐오하는 자는 비판할 수 없고, 비판하는 자는 혐오할 수 없다."

 

는 구분입니다.

③ 허위가 아닌 사실을 통해 5·18의 권위를 극복할 것

북한군 투입설처럼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5·18 이후 형성된 정치·사회적 구조와 그 부작용을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 발표자의 최종적인 전략입니다.

 

이 발표에서 1980년의 5·18 자체를 처음부터 주사파가 기획한 사건으로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이후 5·18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주사파가 장악하고 호남과 결합하면서 1987체제의 권력구조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를 통해 호남-주사파 연대가 정치권력, 국가예산, 국책사업, 인사, 보훈제도 등에서 집단적 이익을 확보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5·18은 그 구조를 보호하는 핵심 상징자산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이러한 구조가 5·18의 성역화와 표현의 자유 제한, 피해자 중심주의의 전국화,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재해석 등으로 확대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5·18특별법과 각종 정치·사회적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권위가 약화되고 있으며, 이것이 '5·18의 황혼'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우파는 5·18에 무조건 굴복하지 말고 북한군 투입설과 같은 입증되지 않은 주장보다는 5·18 이후 형성된 정치·사회적 구조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1987체제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 발표자의 최종 결론입니다.

3. 토론회에 참석한 발표자들

3-1 이영훈

대한민국의 경제사학자 이영훈(李榮薰, 1951년 9월 10일 ~ ) 전 서울대학교 교수는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한국 경제사를 연구해 온 학자이자,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대표적인 이론가입니다. 학술적 실증 연구로 명성을 얻었으나, 일제강점기 및 역사 인식과 관련된 주장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매우 큰 논란과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논란 및 비판을 받는부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반일 종족주의 발간 파문: 2019년 조장(대표 저자)으로 참여해 발간한 저서 《반일 종족주의》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및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한국 사회의 반일 정서를 '근거 없는 종족주의'라고 비판하여 학계와 정치권, 대중으로부터 엄청난 공분과 비판을 받았습니다.
  • 통계 왜곡 비판: 역사학계 및 허수열 교수 등 일부 경제학자들로부터 "식민지 통치기 기득권 중심의 수치만 짜 맞추었을 뿐, 당시 조선인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황폐화와 수탈을 외면한 억지 통계이자 왜곡된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강한 반박을 받았습니다.
  • 명예교수 사칭 논란: 퇴임 후 '서울대 명예교수' 직함으로 언론 등에 자주 소개되었으나, 실제로는 서울대 명예교수 규정상의 전임교원 재직 기준(15년)에서 약 4개월이 부족(14년 8개월 재직)하여 정식 명예교수로 추대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3-2 김용삼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김용삼은 현재 펜앤드마이크의 대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보수 성향의 현대사 연구가입니다. 과거 언론인으로서 굵직한 북한 관련 특종을 터뜨려 명성을 얻었으며, 현재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재평가하는 강연과 저술 활동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의 시각을 비판하며 보수·우파적 관점의 '역사 바로잡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이승만·박정희 재평가: 이승만 대통령의 국가 건국 과정과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전략을 적극 옹호합니다. 특히 대한민국 성장의 원동력을 '기업가 정신'에서 찾으며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2013),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2015) 등의 저서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을 수상했습니다.
  • 제5공화국(전두환) 재평가 연구: 2026년 상반기, 3년간의 연구를 집약한 저서 《제5공화국 전두환시대》를 출간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물가 안정, 88올림픽 인프라 구축, IT 산업 기틀 마련, 원전 국산화 성공 등의 경제·과학적 성과를 들어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겨내고 정당한 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낙성대경제연구소 및 반일 종족주의: 앞서 언급된 경제학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주도한 《반일 종족주의》 및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등의 저서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이승만학당의 교수로도 활동하며 식민지 근대화론과 궤를 같이하는 역사관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최근 논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역사 왜곡 논란과 비판: 김구 선생의 행적 과장 주장,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등기령 제도로 인한 사유재산권 보장 옹호 등 주류 학계와 대치되는 발언으로 논란 중심에 서 왔습니다. 특히 2026년 8월 국회에서 열린 역사 관련 포럼 등에 참석해 "전두환 대통령에게 무조건 다 뒤집어씌웠다"며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우파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취지의 발표를 하자, 5·18 기념재단을 비롯한 시민단체들로부터 "학술을 빙자한 지능적인 역사 왜곡선전"이라는 거센 항의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3-3 주동식

주동식은 사상 전향을 거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언론인 출신 정당인으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며 큰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입니다.

호남 출신 보수 정치인을 자처했으나, 호남 사회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극단적인 비하 및 도발적 발언으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 "광주는 제사에 매달리는 도시": 21대 총선 후보자 방송 연설 등에서 "정치인들이 광주의 분노를 이용하고 있으며, 광주가 생산 대신 과거(5·18)의 제사에만 매달리는 낙후된 도시가 되었다"고 발언하여 광주 시민들과 지역 정계의 강한 공분을 샀습니다.
  • 세월호 참사 비하 논란: 과거 자신의 SNS에 세월호 참사를 조롱하거나 비꼬는 취지의 막말성 게시글을 올렸던 전력이 총선 과정에서 드러나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 문재인 정부 총독 비유: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중국 시진핑의 지시를 받는 남한 총독인지 의문이다"라며 극단적인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4. 이미 확인된 내용과 발표내용과의 차이와 논란점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의 「시간대별로 보는 10일간의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7일부터 27일까지의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참고링크 : 5·18민주화운동 소책자

 

참고링크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문제는 발표자가 언급한 개별 사실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사실을 사건 전체의 맥락에서 어떻게 배열하고 어떤 결론을 도출하느냐입니다. 일부의 사실을 가져와 해석을 달리하는 발표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특정 정치인의 사상에 연결짓는 것은 더더욱 검증하기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5·18 당시 시민군의 무장화 역시 계엄군의 선행 발포라는 중요한 맥락을 제외한 채 시민군의 무장 사례만을 강조하면 사건의 전체적인 경과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법적 판단까지 이루어진 지만원 씨의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서도, 발표자는 북한군 투입 가능성을 100% 부인할 필요는 없으며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미루는 것이 양심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과거의 검증 과정에서 이미 배척된 주장을 다시 문제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존 판단을 뒤집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증거와 자료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주장에 대해 내놓은 근거도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기존 확정된 사례를 완전히 배척하기보단 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해석을 달리하는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바꿀 수 없으니 해석을 달리하는 것인데 이는 학술적으로 허용되는 범위이기에 이들에 대한 처벌을 언급하는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해당 주장의 가능성을 열어두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이미 조사와 검증을 거쳐 배척된 주장을 다시 제기하면서 그 판단을 뒤집을 새로운 근거를 제시했느냐는 것입니다.

 

다만 일부 주장중에는 사실을 왜곡한 부분도 있기에 발표문 전문을 검토하여 일부 처벌 가능성을 따져볼 수는 있으나 현재로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5. 토론회 당시 상황

관련뉴스 : "5·18은 소요 사태"에 물병 날고 몸싸움…경찰 출동한 이진숙 토론회

 

토론회 관련 보도에는 대부분 그들의 주장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일부 보도에선 현장에서 고성이 나오는 등... 항의하는 모습이 보도 내용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발표가 진행되자 

“아직도 5·18을 인정하지 못하느냐”
“살인자 전두환”

 

이런 고성이 터져나왔고 물병이 투척되고 심지어는 멱살까지 잡는 상황도 벌어졌다는 보도를 통해 당시 토론회의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진숙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가 얼마나 민감한 주제를... 검증없이.. 충분한 고려 없이 발표한 것인지를 추측하게 합니다.

 

6.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단체의 입장

참고뉴스 : 오월단체·시민사회 "5·18 왜곡 포럼 주최 이진숙 제명해야"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단체는 반발했습니다. 공동성명을 내고 

"학술적 연구를 명분으로 5·18을 왜곡하고 호남을 비하하는 주장이 이어졌다"
"국회는 이진숙 의원을 제명하고 새역사국민운동은 역사 왜곡을 중단해야 한다"
"5·18은 이미 역사적 평가가 이뤄졌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됐다"
"토론회에서 5·18을 '소요 사태'로 폄훼하고 전두환을 미화하는 발언이 나왔다"
"수사기관은 토론회 발언과 자료를 조사해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 여부를 엄정히 수사해야 한다"

관련 고소가 진행되고 수사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상황입니다. 현재로선 이진숙 의원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임은 확실합니다.

7. 결론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민감한 주제입니다. 관련법이 제정되어 이를 기념하기 시작한 시점은 1995년에 제정되어 시행된 시점입니다. 그 과정에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많은 부분이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모두가 인정하는 그 사례가 되진 않았습니다. 위의 보도에 나온 토론회가 그 근거가 될 것입니다.

 

특별법이 개정되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되어 왜곡 및 허위사실 유포를 하게 되면 처벌하는 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참고링크 : 5ㆍ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8조(5ㆍ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금지)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5ㆍ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신문, 잡지, 방송, 그 밖에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의 이용
2. 전시물 또는 공연물의 전시ㆍ게시 또는 상영
3. 그 밖에 공연히 진행한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집회, 가두연설 등에서의 발언
② 제1항의 행위가 예술ㆍ학문, 연구ㆍ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를 위한 것이거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본조신설 2021. 1. 5.]

이  특별법을 들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두고 성역이냐며 반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처벌조항이 신설된 시점은 2021년으로 최초 제정된 시점부터 벌칙이 제정되기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된 왜곡과 폄하 사례는 많았다는 것을 간과한 주장입니다. 개인적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성역화시킨건 정작 5.18 관련 폄하를 자행한 이들이 만들게 했다고 판단합니다. 그들의 폄하가 없었다면... 처벌조항이 과연 신설될 수 있었을까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조항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5·18에 대한 학술적 논의 자체가 제한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학술적 목적의 토론과 연구는 필요하며, 5·18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다만 기존에 왜곡된 것으로 확인된 주장을 다시 제기하여 기존 판단을 변경하려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증거와 증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충분한 연구가 먼저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걸두고 발표를 한 이들에 대해 그들의 사상부분은 비판의 기준에서 제외하더라도 그들의 발표내용에 대한 검증은 불가피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들의 발표내용이 학계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들의 이런 시도는 지속될 것입니다. 동조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시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사실검증의 환경은 이전보다 정교화되고 아카이브를 통해 보존은 장기화가 가능한게 현재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더욱 기록의 보존과 검증은 철저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 것보단 검증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그들의 주장에 대한 일반적 대처임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를 느끼는 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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